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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 환상일 뿐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인종의 탄생은 환상에 불과했다. 너와 나의 차이가 칼로 자른 단면처럼 매끄러우리라는 착각, 상대방으로부터 분리할수록 나의 정체성이 뚜렷해지리라는 기대. 피부색, 민족, 종교 등을 기준으로 타인과 구분 짓고자 하는 욕구야말로 인류가 유일하게 지닌 공통점 아닐까. 급기야는 문명인과 야만인, 주인과 노예 사이에 넘지 못할 선을 긋기에 이르렀다. 인간 집단들 사이에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론, 신체의 차이를 우열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인류사에 숱한 비극을 낳았다. 하지만 우리가 인종이라 부르는 집단들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고 한다. 즉 ‘인종 특성’처럼 보이는 차이점은 개인의 능력이 사회에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백인의 두개골이 더 크기 때문에 우월하다 거나, 농구는 지능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타 인종보다 유리하다는 헛소리를 우리는 더이상 믿지 않는다. ‘인종’ 구분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생물학을 이용한 기만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자. 하지만 과학을 이용한 사기, 악의로 가득 찬 이 단어가 오늘날에도 버젓이 쓰인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인종 개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모두가 안다고 하더라도 집단 간의 우열 가리기는 여전하다는 현실. 인종이라는 환상을 폐기하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실재성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로서 현실적이라는 뜻인데, 우리는 그런 개념들이 낯설지 않다. 예들 들어 ‘돈’이란 존재하지 않으면서 실재한다. 당신은 정말로 지갑 속에 든 종이 쪼가리가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가? 돈은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쓰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 또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며 존재하지 않지만, 구성원 사이에서야 비로소 실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종에 대한 엉터리 근거에 사형선고를 내린 후에도 ‘만들어진 실재성’을 가진다. 그러니 이 개념의 생물학적 본질이 아닌 사회적 기능에 주목해보자. 존재하지 않는 것에 현실성을 주기 위해 인류는 과학을 끌어오면서까지 인종이라는 오류를 정당화시켜야만 했다. 본질이 없지만 현실적인 것, 즉 인종은 더이상 환상이 아니다.

인종을 환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와는 별개로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용하는 까닭이다. 애초에 그것의 탄생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서양 근대 국가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차이의 생산이었는데, 국경으로서 땅에 금 긋기는 물론 그들의 국민을 구체화하기 위한 금 긋기 또한 필요했다. 한 개인을 카테고리 안에 분류하기 위해 서양은 ‘근원’, ‘뿌리’(race, radical)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피부색과 같이 눈에 보이는 신체적 차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 집단의 뿌리가 차이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위해 근원을 만들어 낸 것에 가깝다. 닮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국가의 지배 영역 안에 넣기. 그리고 집단 A는 집단 B와 C를 거르며 구체화한다. 인간을 분류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차이’를 ‘차별’로 둔갑시키기에 이른다.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세력에게 인종 구별은 예나 지금이나 차별이 목적이며 타인에 대한 증오는 한 집단을 결속시키기에 유용하다. 트럼프도 백인우월주의에 부채질한 덕을 톡톡히 보지 않았나.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인종차별이 근거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가능한 이유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더는 피부색으로 국적 판단이 불가능한 오늘날 인종차별은 좀 더 교묘하고 투명하게 사회 속으로 스며들었다. ‘Raciste (인종차별주의자)’ 라는 지탄을 받는 것이 모욕적임을 모두가 알면서도 차별이 존재하는 모순. 이방인으로 프랑스에 산다는 것은 이 모순에 휘둘리는 삶이었다. 아랍인과 아프리카계 이민자에게 겨누어지는 증오, 백인 남성 비율이 압도적인 사회 고위층과 세습되는 엘리트주의, 그리고 이방인 여성의 숙명과도 같은 ‘웃는 얼굴을 한 인종차별’ 등. 이곳은 특정 인종이 싸워 물리쳐야 할 악이며 다른 인종은 판타지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땅이다.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 한국이 과연 나은 처지에 있을까. 덜 익숙한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 우리는 더 큰 혼란을 마주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제일 먼저 공동체로부터 정체성을 찾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나인 이유가 피부색, 특정 국적에서 나온다는 순진한 믿음이 차별을 부른다. 인종이라는 터무니없는 미신을 부정할 것, 하지만 인종 개념이 악용되는 순간 단순한 환상을 넘어선다는 걸 알 것, 그리고 집단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개인의 정체성을 가질 것. 인종 개념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사라진 지금, 차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31/10/2018

글/전진
파리에서 고양이 모시고 사는 철학도

이미지/김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