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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018
글/김새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사회과학부 학사 과정 중  


유학생으로 살기가 쉽지는 않다. 내가 갖고 있는 외국인 학생 체류증은 프랑스에서 안전과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 체류증은 3년짜리인데, 그동안 투표권, 국내 학생들 한정 생활 지원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으로서 타지에서 산다는 것은 팍팍하다. 나는 명실상부 프랑스 국립대학교에 적을 둔 학생이고,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일하지 않고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 그러나 내가 운 좋게 가진 이런 모든 도움을 염두에 두더라도 남의 나라에서 지내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고난이 있다.

사상 초유의 정치 스캔들 이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속속들이 전임 대통령의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충격적인 뉴스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무사 기밀 문건이었는데, 탄핵 시위가 계속되던 시점에 작성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기각될 경우 계엄령을 내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안에는 바로 군인을 각 도시 중심가에 파견하고 모든 통신과 전파를 차단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뒷골이 서늘했다. 마음으로 함께 했던 탄핵 시위에는 나의 부모와 남동생, 그리고 수많은 친구가 참여했다. 8천 킬로미터 밖에서 내 고향의 소식을 알아낼 방도가 사라질지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그 계획이 실행됐더라면, 한국에 돌아간 들 나의 안위가 불분명해질 것이 뻔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이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지 못한다고 쫓아내지는 않을 성격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프랑스인과 하우스 쉐어 중이고,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국립대학교 학생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걱정에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놓이더라도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인프라에도 접근할 수 있다. 난민 신청은 그런 국가 위기적 상황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게 국제사회가 제공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 최후의 보루를 선택하는 사람 중 나는 꽤 조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게 상상으로 돌린 시뮬레이션의 결론이었다.

난민이 된다는 것은 최소한 지역 단위의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혹은, 당신의 공동체에서 당신의 어떤 정체성 때문에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난민 지위 심사는 어느 선진국이라도 까다로운 편이고, 유럽 선진국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난민들의 절대 다수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만약 한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어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체류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상상해 보자. 그래도 나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적대적인 경찰들로 둘러싸여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로 세운 난민촌으로 가야 하진 않을 것이다. 고작 몇 달 전 작은 슈트케이스를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탔던 런던 행 유로스타 기차에 뛰어들어 위험천만한 불법 밀입국을 시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조금 더 난민에게 호의적이라는 소문만 믿고 영국으로 아이들만이라도 보내기 위해 총 든 군인들 앞에서 맞서다가 뺨을 세대나 얻어맞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만삭의 임산부와 같은 처지가 되지도 않으리라. 난민 신청이 까다로울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당장 걱정을 떠안아야 할 것이고, 엄청난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지만, 나는 2016년 까지도 프랑스 칼레, 덩케르크에서 벌어진 것 과 같은 난민촌 강제 철거와 주변 주민의 혐오에 휩싸여 고통받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의 무사를 바라면서, 한국의 뉴스를 밤새 찾아 헤매면서, 같은 유학생 친구들과 불분명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그것은 내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가는 끔찍한 상황이겠지만, 그런데도 난민 사회에서는 제법 운이 좋은 케이스다.

처음 난민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이 글을 읽을 한국인 독자들에게 난민 협약이 우리와 상관없는 이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그런 약속이 아니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한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던 시기, 헌법 재판관 한두 명이나 전 대통령 주변의 고위직 몇 명이 조금만 더 행동력이 있었다면 바로 그 협약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서울 북부에서 초중고를 전부 졸업하고 대학교에도 들어갔었고, 여름마다 제주도로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는 보통 이십 대 여자, 나. 나에게도 난민제도는 최후의 보루였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다. 인텔리 중산층 출신의, 아이패드와 아이폰과 최신형 랩톱을 가진 내가 프랑스 사회에서 난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니 난민 협약을 우리가 베풀어주고 손해 보는 위험한 일이 아니라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의례 짊어져야 할 보편인권을 위한 연대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취지로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차 프랑스의 난민촌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난민 인권 현황이 얼마나 끔찍한 수준인지 알게 되어버렸다. 몹시 혼란스러웠다, 고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 현황을 구구절절 읊으면서 인간적 감정에 호소하기에 내가 읽은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프랑스에서 난민으로서 체류하게 되어도 집 앞 이 백 년 된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따뜻한 내 방에서 걱정 없이 베어 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그 간단한 외출은 내가 사는 가끔 지겹고 따분한 이 도시와 이 나라의 사람들을 이웃으로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들이 막아서 난민캠프에 아이들을 먹일 바게트 하나를 들고 들어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 캠프 밖으로 나와 총 든 프랑스인 경찰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며 빗물 젖은 바게트를 먹고 허기를 채워야 했던 아이들은, 프랑스 사회에 아무런 소속감도 안도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난민 가족이 겪은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난민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남 얘기가 맞다. 그러나 이 결론을 내린 내가 그렇듯 이 글을 읽다 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가질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도우며 살기 때문이다.

고인류학자 이상희의 <인류의 기원>에서는 젊어서 큰 부상을 입어 혼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주변의 보살핌으로 늙어서까지 살아남은 유인원의 화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첨예한 난민 문제에 대한 갈등에 이렇게 단순한 ‘인류의 이타성’에 호소하는 답을 내리다니, 순진해 보이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와는 먼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 시점에도 여전히 난민 처우 개선과 차별 반대를 주장하고 싶은, 언뜻 보면 모순된 감정은 이 단순하고 오래된 이타성에서 기인한다. 난민 차별자들에게 화가 날 때면 나는 줄곧 ‘난민이 남의 일 인줄 알아?’ 라고 외쳤다. 그런 나에게 지금은 다르게 말해주고 싶다.

‘남의 일이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