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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중 네트워크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결심한 시점에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일명

탈조선 유학.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중이 싫다고 절이 떠나는 법은 없으니까.

왜 프랑스를 선택했는지 묻는다면 명쾌한 답을 하기가 어렵다. 왠지 프랑스여야만 했다. ‘왠지 - 여야만

했다’라는 표현의 모순 같은 모종의 모호함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곳에 가야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첫해에는 힘들거나 불공평한 일을 겪어도 한국에 있는 것보단 나으리라는 마음으로

외면하며 묵묵히 견뎠다. 한국에서는 비겁하다고 했을 불의를 보면 참고 지나가기도 잘하고,

학교에서는 한껏 수그리고 다녔으며, 남자들이 던지는 기분 나쁜 추파나 농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곳에서 나의 모습은 예전의 나였다면 맹비난을 했을 비굴함과 가식의 극치였다.

나는 무엇을 찾아 이곳에 왔나... 밀려오는 회의감과 자기혐오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 보낸 날이 허다했다.

이 수동성은 한국에서 수행해오던 그 어떤 역할과 행동 양식도 프랑스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리감과 당혹감에서 비롯되었다. 나를 나에게 이어주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나는 이곳에서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존재였다. 그 낯선 이가 나의 삶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더는 예전에 즐겨듣던 노래를 듣지 않게 되고, 좋아하던 그림이나 영화에

무감각해졌다. 한 취향에서 다른 취향으로의 전환이 아닌, 어떤 자극에도 큰 감흥이 없는

무(無)취향의 상태를 한동안 지속하였다. 하지만 뜻밖에 그와 같은 상태를 지속할수록 이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린 건가 하는 불안함보다는 초기화를 한 아이팟이 된 것 같은

쾌감이 더 컸다.





공허하면서 자유로웠다. 물거품에서 홀로 태어난 아이처럼.

휘청휘청 걷는 프랑스 유학 생활 중 그나마 확실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프랑스에 대한 짝사랑을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부정적인 만남도 긍정적인 만남만큼이나 많았지만, 모두 꼭

일어나야 했을 만남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민감한 만남은 절이 싫어 떠난 나와 같은

한국인 유학생들과의 만남이다. 보통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학생 일수록 같은

한국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 불어가 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잘 드러내지 않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받아온, 그렇게나 용을 써서 벗어나야 했던, 그 치명적인

상처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유학생은 다른 듯 비슷한 이유로 절을 떠나온 떠돌이 땡중들이다.

고기와 술의 맛을 아는 땡중의 마음을 같은 땡중이 아닌 누가 더 잘 알랴! 문과생의 향수로

인해 뭔가 장승업 같은 말투가 되어 버렸지만, 글쓴이는 채소를 더 좋아하는, 케밥밖에

모르는(케밥은 고기의 힘이 나지 않기 때문에 고기가 아니다) 사랑스러운 소녀이다. 밤새워서

논문 쓰면 장승업의 근사치에 가까워지는 것 같기는 하다. 뭔가 수염도 나는 기분이고. 장승업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프랑스 첫해의 ‘삭제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한국

사회에 대한 찌든 때와 같은 환멸과 거부감 때문에, 이와 같은 만남의 소중함과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 했을 것이다.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땡중들이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때이다.

서로 마셔온 해골 물과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떠나온 자의 자유로움으로

아직 마음의 감옥을 떠나지 못한 중생들에게 본격 뜬구름 잡기 실전공략법을 전하는, 그런

일들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꿈꿔 본다.

20/11/2018

글/임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