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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의 밥통.



11/01/2019
글/전진
파리에서 고양이 모시고 사는 철학도



10년을 알고 지낸 동네 친구가 보르도에 교환학생을 다녀갔다. 나조차 프랑스 유학 생활 4년 차에 접어들며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와인의 도시, 그곳에 부곡동 출신의 내 친구가 있었다. 종종 파리에 오곤 했던 그녀에게 한번은 밥통을 손에 들려주었다. 프랑스에 반년 교환학생을 오면서 밥 짓는 기구가 있을 리 만무했고 보르도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신문물은 못 보았다는 그녀가 짠해서였다. 때마침 내게는 벼룩시장에 팔려고 했던 못생기고 둔탁한 핑크 밥솥이 있었다. 한국인의 필수품인 그것을 보르도까지 짊어지고 간 친구는 가끔 밥통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제때 밥을 해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곳의 한인 교환학생들끼리 식사를 할 때마다 이 희귀 아이템을 들고 간다며, 모두가 반긴다고 했다. 처음에는 교환학생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6개월간의 기억을 정리하고 출국할 때 밥솥까지 챙기는 일이 버거울 것이 뻔했기에 굳이 다시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친구에게 전했다. 보르도에 좀 더 오래 머무는 이에게 주고 오라고. 그리고 누군지 모를 그분 또한 밥통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줄 것이다. 프랑스 남부의 한 도시에서 한국 교환학생들에게 대물림되는 핑크 밥솥. 그 물건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밥통의 소유주였던 이들의 운명도 생각해보았다. 나와 보르도 교환학생을 다녀간 동네친구. 중학생 때 처음 만나 학교와 집을 오가던 작은 세상 속에서 실없이 많이도 웃었다. 그때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을지 서로 얘기해본 적이 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테다. 나는 파리에, 그녀는 보르도에서 일정 시간의 젊음을 살아낼 거라고 약속한 적 없었다. 밥통을 주고받을 줄은 더더욱 몰랐겠지.

운명이라. 나와 친구를 떠나 주변 모든 이들의 삶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특히나 유년 시절을 공유했던 이들이 졸업 이후 먹고 살 길을 마련해 나가거나 대학에 진학하여 학문을 선택하고 끝마치는 모습이, 각자의 운명이 굵직한 선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새삼 충격적이다. 10년 전 그토록 거리감이 느껴졌던 ‘어른’과 닮아있어서. 그리고 나또한 무한한 가능성을 휘둘러대던 중학생이 더는 아니라는 사실, 시간과 선택을 맞바꾸는 거래를 하고 책임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 숨이 턱 막힌다.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인간의 삶은 보르도로 보내버린 밥통과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수놓는 손이 자신의 것임을 알아차릴 때, 그리고 언젠가 죽음을 앞두고 운명을 손에서 놓아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때 공포에 사로잡힌다. 시작은 내 의도가 아니었으나 그 과정과 끝을 떠안아야 한다는 존재의 방식은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불안은 자신의 존재에 직면하게 하는 가장 탁월한 기분이 아닐까.

보르도로 보내버린 밥통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배고픈 한국 유학생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지어내는 삶이라. 윤리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차라리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지금의 내 삶보다 이로운 것 같은데. 밥통이나 나나 세계 안의 존재자라는 사실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내가 두려워했던 삶은 도구적 삶이 아니었을까? 내가 보르도로 그 물건을 보내버렸듯이 나도 타인이,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삶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10년 전의 필자가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입시에 목매달았던 것처럼. 스스로를 평준화하는 삶. 그 와중에도 ‘남들과 다르고’ 싶었던 나는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튀는 개인임을 뽐냈다. ‘시롱새’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매년 학생대표로 일하며 청소년 강연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강연 중 울음에 목이 멨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솟구쳐 연단 위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 떠올려보면 앞으로 살아갈 도구적 삶에 대한 불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가 요구하는 유용한 인간, 쓸모있는 인간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벌건 눈으로 연단을 나오는 나에게 젊은 촬영기사가 속삭였다. 하이데거를 읽어보라고. 물론 까다롭기로 유명한 책이니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운명처럼 철학과에 들어온 지금 <존재와 시간>을 다시 읽는다. 기억의 저편에 아득해지고만 일화이지만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Dasein, 현존재와 공명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걸.

밥통과 현존재의 차이. 나나 밥통이나 세계 속의 존재자임은 매한가지다. <존재와 시간>의 서두인 ‘존재 물음을 던지는 이유’를 넘어 한 가지만 기억하자. 밥통과 나의 차이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점이다. 존재는 존재자를 있게 하는 것, 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뿐이며 동시에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독특한 존재자이다. 나의 존재는 밥통의 존재처럼 이미 고정되어버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존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 자신에게 주어진 나의 존재 가능성을 고민하기.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듯이 휩쓸리고 사는 것은 존재의 망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신의 존재에 직면하게 하는 기분인 불안을 잊게 만드는 장치가 넘쳐나는 시대다. 인터넷, 쇼핑, SNS뿐만이 아니라 입시나 취업 또한 존재 문제보다 더 급한 골칫거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좋은 대학에 가거나 남들이 선망하는 기업에 취직하면 모든 불안이 해소된다는 듯이. 한국 사회는 내게 존재 물음을 던질 틈을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의 민낯과 마주 하고 싶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쓸모없는 인간, 잉여 취급하더라도 나의 본래성을 찾고 싶었다. Da-sein, 존재의 거기에, 존재가 나타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은 이러한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는 ‘자리’이고 존재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프랑스로 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나의 존재 가능성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계기였다. 글을 읽는 누구나 방식은 다르더라도 자신의 가능성을 떠맡고 선택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속 존재자들을 찾아 나선다. 내가 ‘손안에 넣어야’ 했던 것은 프랑스어, 철학 등이 있었다. 존재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하이데거는 ‘기획투사’라고 했다. 이런 자기계발서적 이야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가능성을 펼쳐야 할 세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 속 ‘그들’의 논리를 따르고 ‘그들’의 언어로 잡담하며 산다. 실존에 대한 고민 없이 사는 세인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아닐까.

나의 ‘여기 있음’을 고민하는 삶. 잉여라 지탄받더라도 ‘그들’이 만든 가짜 불안을 거부하는 삶.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시간, 그리고 죽음을 향한 존재로 만드는 시간 속에서 운명을 내 손으로 짜짓는 삶.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나와 같이 불안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내던져져 있는 상태, 우리의 존재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당신이 가진 밥통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소유주가 내리는 결정을 따를 것인가. 당신의 소유주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